듣고 답하는 기쁨
듣고 답하는 것은 기쁘다
내 직업은 하루 종일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다. 프로젝트들이 잘 진행되는지 상의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목표를 세우거나 막혀있는 부분을 찾아내서 함께 풀기도 한다. 그 누군가가 내 팀에 있는 사람이면, 잘 자라고 있는지, 필요한 서포트가 충분히 옆에 있는지, 아직 넘어보지 못한 챌런지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뭐 이런 저런 얘기 많이 한다.
스무살의 나에게 만약
너가 몇십년 뒤에 하루에 미팅을 10개씩 하는 사람이 될거야
라고 물어보았다면 나는 전혀 믿지 않았을 것 같다. 성격도 성격이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을 계속 만날 정도로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기에.
매니저를 하면서 뜻밖에 느끼는 것은 사람들을 만나서 쓰는 에너지보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받는 에너지가 더 크다는 것이다. 물론 집중을 오래하고 그러면 체력이 소진되는 건 맞다. 하지만 그런 체력 소모가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어떤 기쁨 같은 것이 있는데, ‘듣고 답하는 기쁨’ 정도로 밖에 표현이 안된다.
모든 사회가 그렇겠지만, 내가 대하는 엔지니어들은 질문과 답하는 식으로 대화를 많이 한다. 질문 하나를 던져도 그것이 시간 낭비가 되지 않도록 ‘좋은 질문’을 만들어서 한다. 예를 들면, 앞으로 일 진행에 대해서 궁금하면,
What’s your plan forward?
이런식으로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생각하고 다듬어서
What would your ideal week look like?
이런 식으로 물어볼수도 있겠다. Ideal week 이라는 말은, 최선을 다하지만 일이 잘 안될수도 있다는 배려가 담긴 말이고, 플랜을 내놓으라는 명령보다는, 너가 가진 그림을 설명해 달라는 터치가 들어있다.
답을 하는 사람도,
I plan to do A, B, and C
라고 퉁명스럽게 얘기 할수도 있겠지만, 질문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 질문에 더 맞게 대답할 수도 있겠다. 흠, 변수가 있는 것을 저 사람도 알고 있지만 긍정적인 결과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알고 싶어하는 구나 …
Let’s see. In an ideal scenario, assuming there are no unknowns, I think I will be able to demo A to person B as I am ending this week. Pretty comfortable keeping the goal as is, but you’ll be the first to know if I get blocked on anything.
만들어낸 몇 문장이지만, 정말 이런식으로 ‘잘 만든 질문’과 ‘그 의도를 잘 헤아리는 대답’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렇게 30분동안 대화를 하고 나면,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떠나서, 좋은 질문과 답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좋은 감정들이 쌓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한다는 것이 그렇게 신비로운 부분이 있다. 잘 물어보고 잘 듣는 것만으로도 참 즐겁다. 뜻밖의 행복이 내 직업안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