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aries
흔히 접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서 어떠 어떠한 삶의 방식을 취해도 되는가
라는 질문이 늘 편하진 않다. 이런 질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내가 세상에서 누리고 싶은 것이 이렇게 많은데 이 부분도 괜찮은가’ 라고 확인하고자 하는 Minimum Condition 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Boundary 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아예 그것이 없는 것 보다 좋은 거야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은 그런 최소한의 조건을 바라보면서 자라지 않을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으로서 집을 한채 이상 사서 투자해도 되는가’ 에 대해서 고민한다고 상상을 하자. 성경적으로 소유에 대한 정의, 그리고 수고와 저축의 의미 뭐 이런 것을 찾아보면서 접점을 찾아 볼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어디까지 허용되는가에 대한 Boundary 질문이다.
Boundary 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면 내 평생에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될것인가, 혹은 정말 내가 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 무엇일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집 2채 구매’ 에 대한 질문을 꺼내기 조차 힘들것 이다 (특히 Housing Supply 가 이렇게 없는 시점에서). 그들의 관심은 Maximum 에 대한, 신앙의 목적지가 어디에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인으로서의 삶은 Boundary 에 초점을 맞추기에 너무 고귀하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삶, 더이상 내가 노예로 살지 않는 삶에서 어떤 생활 양식이 나올까에 대한 커다란 상상들이 대신 나와야 할텐데 말이다. 우리는 어디까지 갈수 있는가!